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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링2025-12-14약 9분

숫자 세기: 디지털 혁신의 세 단계

디지트(digit)는 라틴어로 손가락을 뜻합니다. AI의 시대가 오기 전에 디지털화, 디지털 전환, 가치를 위한 디지털화가 순서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손가락을 뜻하는 라틴어 디지트에서 디지털이 왔습니다. 컴퓨팅에서 디지털은 나누지 않고 전체를 지시하는 연속적인 아날로그 상태가 아니라 최소 단위를 가진 불연속적인 숫자의 상태이면서 전체로 보면 같은 특성을 만들어내는 방식입니다. 컴퓨터는 이런 방식으로만 재료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문서와 통계, 음성과 영상이 디지털로 바뀌고 한번 바뀌면 복사와 삭제, 편집이 쉬우며 사본은 원본과 완전히 같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거의 모든 것이 이제 디지털로 처리됩니다. 통화조차 불연속적인 숫자의 나열로 바뀌어 전송되고 수신되어 다시 합쳐지지만 우리는 그 중간의 변화를 느끼지 못합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 삶의 많은 영역은 이미 전환되었고 그 결과물은 컴퓨터가 AI로 드러나는 밭이 됩니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이 디지털이 되어야 AGI가 가능해지는데 이는 인간 행위의 대부분이 아직 디지털화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AI의 영역을 업무의 수행으로 좁혀도 업무는 사람이 하고 사람은 업무 중에 디지털로 담을 수 없는 수많은 일을 합니다. 인간의 행위는 저절로 디지털로 기록되지 않습니다. 이를 바꾸려면 컴퓨터와 사람 사이의 입출력 방식 자체에 혁신이 필요합니다. 신경 연결을 심어 뉴런의 전기 신호를 디지털로 바꾼다면 현재 일어나는 모든 것이 디지털이 되고 AI에는 혁명적인 도약이 일어날 것입니다.

스마트폰은 키보드와 마우스의 시대를 인간의 직관에 기댄 언어 입력과 손가락 제스처의 시대로 극적으로 바꿨습니다. 종 전체의 삶의 방식을 바꿀 만큼 큰 혁신이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최근의 AI 발전은 그 위에서 소리와 시각을 지나 소리와 시각의 의미로 넘어가며 무한한 가능성의 데이터 기반 소통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가능성만으로 현재의 인간 행위 전부가 실시간으로 디지털이 되지는 않습니다. 컴퓨터와 소통하는 우리의 수단은 5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만큼 빈약합니다. 여전히 화면과 키보드, 마우스, 마이크, 스피커, 카메라가 들어간 손바닥만 한 사각형에 기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으로 인한 노동시장 변화를 다룬 한국개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국내 일자리 열 개 중 아홉 개는 6년 안에 업무의 90퍼센트 이상을 AI와 로봇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전문적이고 숙련된 노동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한국은행은 국내 일자리의 약 12퍼센트가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결국 업무의 수행은 AI가 맡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업무는 대체로 정해진 양식과 패턴의 문제이고 그것이야말로 AI가 가장 빠르고 정확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AI 시대를 미리 걱정하고 있습니다. AI의 시대는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더 앞선 나라에 개발을 맡기고 지켜볼 생각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AI의 시대에 이르려면 완전한 디지털 혁신이 먼저이고 그 혁신은 세 단계를 지납니다. 첫 번째는 디지털 전환의 준비 단계인 디지털화입니다. 첨단 기술로 만든 손바닥만 한 사각형은 한국이 이미 잘하는 영역입니다. 이제 그 너머로 나아가 아날로그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디지털로 바꾸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과 인간의 모든 행위를 컴퓨터가 읽을 수 있게 만드는 일이며 디지털화이자 수치화이자 숫자 세기입니다.

컴퓨터가 세상과 인간의 행위를 이해하게 되면 두 번째 단계인 디지털 전환에 이릅니다. 여기서 컴퓨터는 디지털화된 데이터로 인간이 보지 못하던 통찰을 보여줍니다. 그 위에서 새로운 행동 양식과 문화를 만들고 혁신을 이룹니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경영 전략이고 새로운 가치로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일입니다. 전략과 조직, 업무 프로세스, 문화, 소통, 가치사슬을 통해 기업은 존재하는 줄 몰랐던 시장을 발견하거나 만들어냅니다. AI가 진짜 가치를 보여주는 단계이며 AI를 위한 근본적인 기술 개발도 함께 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AI를 동반한 디지털 전환과 함께 세 번째 길인 가치를 위한 디지털로 갑니다. AI가 가져오는 가장 대표적인 가치는 생산성 향상으로 만들어지는 부입니다. 일상의 편의는 덤으로 따라옵니다.

AI는 우리의 것을 빼앗거나 무언가와 맞바꾸는 경쟁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쓸모 있는 가치를 위한 수단으로 디지털과 AI를 사용하며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AI의 미래 모습을 그리기 어려운 것처럼 AI를 수단으로 쓰는 미래의 모습도 또렷하게 그리기 어렵습니다. 기술은 수단에 머물지 않고 때로 인간의 목적 자체를 바꿉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디지털과 AI가 만드는 새로운 세계는 남에게 넘기기 어렵고 그 결과가 우리의 것이라는 점입니다. AI의 시대를 향한 노력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고 그 노력 속에서 만들어지는 시장은 우리의 것입니다.

AI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